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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 가족을 위한 예배 (목회와 신학 2007.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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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평화교회
  • 작성일 : 18-05-10 16:33
  • 조회 : 1,083회

본문

자살자 가족을 위한 예배
-자살자 가족을 위한 임상목회적 지원-



   “4년 전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심방하는 성도 옆의 병실에 있었는데 마침 함께 동행한 권사님이 잘 아는 그녀에게도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 때 처음 그를 만난 것이다. 그는 동네 개인병원에서 감기몸살로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쇼크로 다리에 마비증상이 와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했다. 쌍까풀 수술을 금방 했는 듯 눈가의 주름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어중간한 자세로 일어나 함께 기도했고, 나는 그에게 퇴원하면 교회에 나올 것을 권했다. 그 후, 한달쯤 지나 교회에 나왔고 등록을 했는데 첫 심방은 가정이 아닌 동네 시장안의 사업장으로 갔었다. 한달에 한두 번 나오는 그리 성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목사가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그래도 웃으며 반기고, 목사가 기도하고 가면 마음이 푸근하다고 주변에 자랑할 정도로 정이 많은 성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일 밤 그가 교회에 왔다. 그날은 다른 설교자가 수요일 밤 예배를 인도했고, 나는 습관적으로 뒷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그가 마침 내 앞에 앉았기에 한눈에 그가 왔구나 하고 알아차렸는데 주일날도 잘 못 나오는 성도가 어떻게 가게 문을 닫고 수요일 밤에 왔을까 의심도 않고 그냥 목례로 인사만 했다. 다음날 새벽 전화를 받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그가 그날 밤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이다.”
  목회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목회자라면 이런 사례를 들을 때 금방 목회자의 사역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첫째, 병원심방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전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병원 심방 중에 우리 성도를 위할 뿐 아니라 주변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줌이 필요하다. 둘째,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러 갈지라도 먼저 기도해야 한다. 기도 없이 주사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의학이 발전하고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뛰어나지만 한편 의료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셋째, 목사는 사업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그들의 사업을 위해 기도해 줌이 필요하다. 성도들은 자신들의 기업을 위해 기도해 주는 목사가 고맙다. 넷째, 설교자는 매 순간 설교할 때 자신의 청중 가운데 삶의 위기 한복판에 있음을 알고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야 한다. 다섯째, 목회자는 성도 가정의 위기 때에 그 진가가 드러난다.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는가? 아니면 함께 당황하고 염려하며 손을 놓고 기다리는가? 를 보면 목회역량이 드러난다. 여섯째, 무엇보다 이 가정의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상처에서 회복되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해 도와야 하며 그들을 위해 예배를 인도해야 할 임무가 있다.
  필자는 이 여인의 자살을 두고 마음에 많은 자책과 반성을 가졌다. 그래서 그동안 장례식들을 보면서 느낀 것을 정리하여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죽음을 대비하는 교육을 하기로 했고 ‘죽음예비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가 진행하는 죽음예비학교는 『목회와 신학』 2007년 5월호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일반적으로 사고나 병, 암등으로 죽는 죽음과는 달리 자살로 인한 생의 마감은 그 가족이나 주변에 깊은 슬픔과 많은 상처를 주게 된다. Barrett, T. W. & Scott, T. B., "Suicide bereavement and recovery patterns compared with non-suicide bereavement patterns". Suicide and Life-Threatening Behavior(New York, NY: Guilford Publications), 20(1), 1–15.
우리 한국은 자살자가 심각할 정도로 그 비율이 세계적으로 높다. 그럼에도 자살에 대한 교회의 인식은 아직도 태연하고 잘못 정보와 이해를 갖고 있다. 다행히 자살에 대한 방지책들은 많이 소개되었는데 여기서는 자살 이후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임상목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도우며 예배를 인도할 것인가 목회적 지원의 측면에서 조언하고자 한다.

1. 위기적 상황과 목회자
대부분의 목회자는 성도의 아픔과 고통의 상황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자살했을 경우 믿음이 출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큰 고통과 아픔을 겪게 된다. 이때가 어려운 때이며, 위기의 때이다. 가장 고통스런 때이기도 하다. 이때 목회자의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목회자는 기쁠 때 뿐 아니라 당연히 고통의 때에 함께 해야 한다. 성도의 인생에 가장 큰 어려움이 왔을 때 가슴으로 끌어안고 울어야 한다. 당사자들에게는 가장 어두운 때이지만 원래 목회자란 하늘이 깜깜한 때에도 별을 바라보게 하는 자가 아닌가? 이런 위기의 때에 주의할 점이 있다. 집단보다 한 개인에게 집중해야 한다. 당장 성도의 가정에 어려움이 올 때 이런 상황이 혹시 교회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말고 당사자 개개인의 아픔에 주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된다. 언젠가 성도 가정의 장례식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처가댁의 상이었기에 처가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가 장례예배를 인도하였는데, 그 때 목사님은 상당히 목회경륜이 있어 보이는 어른 목사님이셨다. 흔히 장례식 복장인 검은 색 까운이 아닌 엷은 분홍색 까운에 붉은 색 스톨을 목에 감고 예배 인도하러 나타나셨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는데, 그 보다도 목회예식서를 손에 들고 책 내용에 나오는 구절들을 그대로 읽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 교회 권사님으로 충성하던 분이었는데 그 목사님에게는 아무런 감동이나 슬픔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목회경험이 있는 목회자들은 많은 장례식 인도의 경험이 있기에 그럴 듯 하게 예배는 인도할 수 있고, 인생의 절망의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장례식 예배에서는 유가족들 앞에서 나를 나타내기 보다 주님의 어루만지심과 치료하심이 나타나도록 비껴서야 한다.

2. 남은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하라
교회 지도자들은 자살 이후에 오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알고 대처해야 한다. 특히 목회적 돌봄과 상담, 자살 직후부터 신속한 위로와 지원이 있으면 효과적이다. 특히 목회자들은 남은 사람들을 집중 관찰하고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필요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살 이후에 오는 비탄은 다른 죽음에서 오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가 크다. 적절한 지원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정적 상처는 크고 오랫동안 지속되게 된다. 때로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악몽을 꾸거나 어떤 비슷한 사건을 경험할 때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는다든지 마음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A. J. Knieper, "The suicide survivor’s grief and recovery", Suicide and Life-Threatening Behavior(New York, NY: Guilford Publications, 1999), 29(4), 353–364.
통계에 의하면 주변에 자살자가 있는 경우 자살위험집단으로 구분하여 주의해 지켜볼 것을 권고한다. 토마스 브로니쉬, 이재원 역, 『자살 - 인간만의 파괴적 환상』(서울: 이끌리오, 2002), 72.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첫째는 남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인생의 문제를 적절하게 대처하도록 도와야 한다. 즉 사랑하는 이와 사별한 후 나타나는 반응의 원인과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관련 정보를 찾아 해석한 후, 갑작스런 이별로 인한 여러 고통스런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적극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둘째로 자살의 유형에 따라 필요한 조언을 준다. 자살자는 부모일 수 있고, 어린 자녀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까운 친구나 동료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부분에 목회자가 지원해 주기는 어렵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족 상실에 따는 슬픔을 이기는 다양한 정보와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자살 이후의 지원은 단순히 임상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슬픔의 때인 만큼 따뜻하면서도 실용적인 방법으로 지원책을 찾는 것이 좋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위로와 조언과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이어야 한다. 넷째로 무엇보다 영적 지원이 큰 힘이 된다. 영적지원을 받게 되면 자살이 일생을 따라다니는 업보나 평생그림자가 아니라 일시적이며 순간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적 지원을 받으면 회복속도가 빠르다. 주변에 자살한 가족이 있을 경우 보통은 10년 20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은 그들의 아픔을 쉽게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3. 자살자 가족을 위한 위로 예배를 드리라
위로예배는 자살자 주변의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다. 위로예배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드릴 수 있고, 때로는 장례가 마친 후 가족들과 친구들을 불러 따로 드릴 수 있다.
특히 그들 마음 가운데 잠재적인 상처나 손상된 마음들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위로예배는 몇 가지 유익이 있다. 첫째로 남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겪는 충격을 흡수하게 하고 그들의 슬픈 마음을 안정시킨다. 자살은 보통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과는 달리 그 충격의 강도가 크다. Berman, Alan L. & Jobes, David A. Adolescent Suicide: Assessment And Intervention(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991), 243-251.
둘째로 보통 살아남은 자들은 자살자에 대해 죄의식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는 기회이다. 셋째로 때로 남은 자들이 분노를 갖는 경우가 있는데 분노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기회이다. 넷째로 남은 자들 가운데 불신자들도 포함되는데 그들에게 성경적 죽음과 인생관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위로예배를 드릴 때는 용어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자살로 죽었다’는 말 대신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자살한 이의 사후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여야 한다. ‘자살자는 지옥에 간다’는 언급은 삼가며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잘 모른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 있기에 우리가 천국 간다. 지옥 간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되고 말 할 수도 없다. 때로는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살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성경은 자살을 반대하고 교회는 자살이 죄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의 사후 문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맡겨야 한다.

4. 목회상담 지원을 하라
자살후 남은 가까운 사람들이 겪는 심리는 한마디로 혼란이다. 감정과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듯한 격심한 정서적 혼란을 겪고, 때로 육신 뼈마디 신경줄 마디가 극심하게 아파오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생존자들은 몇 가지 혼란을 겪는데, 첫째는 충격과 망연자실이다. C. S. 루이스는 뇌진탕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 들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슬픔을 표현했다. C. S. Lewis, A Grief Observed(San Francisco, CA: Harper, 1995), 75.
두 번째는 불신과 부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자살에 대해 들었을 때 대부분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곧장 그것을 부인하게 된다. 자살 직후 며칠동안은 혼란으로 가득하게 된다. 바로 이 순간에 목회적 돌봄이 필요한 때이다. 유가족들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병원에도 가고, 장례식도 치루고, 경찰보고서도 작성하게 된다. 법적인 문제뿐 아니라 재정적 문제들도 처리해야 한다. 이런 순간들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다시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세 번째는 비탄과 절망감이다. 깊은 슬픔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고 정서적으로 우울하고 좌절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네 번째는 분노와 죄책감이다. 자살자의 배우자들은 종종 자살자가 자신을 버려두고 떠났다는 생각에서 분노를 갖게 된다. 남은 자신들이 잘 돌아보지 못해 자살했다는 생각에서 죄책감을 크게 갖게도 한다. Carol. J. Von Dongen, "Experiences of family members after a suicide", The Journal of Family Practice(Montvale, NJ: Dowden Health Media, 1991), Vol. 33(4), 375-379.
다섯째는 수치심을 갖는다. 다른 어떤 종류의 죽음보다 자살은 인생의 실패나 나약함의 표시라고 믿고 남은 자들은 수치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특히 믿는 이의 자살일 경우 남은 가족들은 더욱 수치심을 갖는다. 그래서 ‘자살했어’라고 말하기보다 ‘그저 병들어 죽었어’라고 변명한다. 실제로 자살은 마음의 병에서 오는 것이고,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한 후 그가 다니던 현대교회에서는 영결예배시 ‘여러 해 동안 앓던 마음의 병’ 때문에 죽었다고 설교하였다.
여섯째 불안과 두려움이다. 자살 이후에 주변에서 또 다시 같은 비극이 일어날까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자살은 항상 뉴스에나 나오는 먼데 이야기처럼 들어왔으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는 더욱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의 가장 무서운 여파는 우리들도 자살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두려움 때문에 남은 가족들을 과보호한다는 것이다. Kay Redfield Jamison, Night Falls Fast(New York, NY: Harper-Collins, 1993), 296.
일곱째 이제 심각한 것은 남은 주변 사람들 가운데 자살자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충동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인사가 자살한 직후 도미노현상과 같이 추종 자살자들이 생기기도 한다. 일명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하는데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서 유래하였다.
목회자들은 이 때문에 자살 직후 적절한 목회지원이 있어야 성도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기게 도울 수 있다.

5. 교회가 치유공동체가 되라
자살자들의 죽음이 생존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을 앞에서 고찰했다. 그러므로 자살자가 심각하게 늘어나는 현대에 교회는 치유공동체가 되어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을 고치고 자살예방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자살 이후에 남은 사람들을 돕는 것은 중요하지만 먼저 자살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치유공동체로 교회는 자살자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자살자의 장례예배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필자의 경험을 따라 간단히 기술한다면, 첫째로 비극적 죽음 자살자의 장례예배에서는 ‘자살’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들은 그런 말을 듣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조심스럽게 ‘비극적 죽음’이라는 말, 혹은 단순히 ‘죽음’ 혹은 ‘사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은 우리가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고귀한 생명을 내가 마음대로 마감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치유하심을 느껴야 한다. 비극적 죽음 앞에 이처럼 서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구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남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소망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셋째로 죽음의 모습을 보며 인생이 불완전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인생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나 죽음 앞에 설 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불확실성은 우리로 더욱 확실한 것을 소망하고 붙들라고 도전하지 않는가? 넷째로 교회는 치유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러운 영원한 이별 앞에서 누군들 충격 받지 않을 사람이 있는가? 우리 모두는 네크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평소에 몰랐던 것을 오히려 이런 슬픈 일을 당할 때 더욱 실감하게 되고 죽음은 우리 남은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돌보라고 가르친다. 강단에서 혹은 장례식장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슬픔을 이기게 만든다.

최종인 목사(평화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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